절묘하고 유려한 문장 감각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아쿠타가와상, 와타나베 준이치 문학상, 나카하라 주야 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 문학의 기수’라고 불리는 가와카미 미에코. 그의 첫 장편소설인《헤븐》은 학교 폭력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발매 직후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철학적인 메시지와 작품성을 인정받아 2010년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을 받았고,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다. 《헤븐》은 14살 중학생 ‘나’가 학교 폭력, 부모님의 이혼, 친척의 죽음, 유일한 친구 ‘고지마’와의 단절 등을 겪으며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나’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방적인 학대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4월의 어느 날 주인공 ‘나’는 필통에서 “우리는 한편이야”라고 적힌 쪽지를 받는다. 남들과 다른 눈, 사시를 가진 ‘나’는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쪽지가 왕따인 자신을 괴롭히려는 새로운 시도가 아닌지 의심한다.
쪽지를 보낸 사람은 더럽다는 이유로 괴롭힘 당하고 있는 또 다른 왕따 ‘고지마.’ 두 아이는 쪽지를 계기로 친구가 되어 여름방학에 그림 ‘헤븐’을 보러 가기도 하는 등 서로의 존재로부터 큰 위안을 얻는다. 미술관에 다녀온 후 방학 내내 ‘나’는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반 아이들의 괴롭힘은 나날이 심해진다.
이 이야기는 대비를 통해 두 아이가 느낄 고립감과 두려움의 심연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학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밀쳐지고, 걷어차이고, 시시때때로 겁에 질리게 되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그려지며 가정은 두 아이의 어려움을 알아채지 못한다.
“물건이 될 수 있을지” 묻고 서로의 약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출구가 없는 듯 점차 거세지는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존재의 이유를 모색하는 것처럼 애틋하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모두의 눈을 피해 쪽지를 주고받고, ‘헤븐’이라는 그림을 건 미술관에 다녀오기도 하고, 옥상과 비상계단에서 만나 대화하며 두 아이는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위로한다. 또한 소설은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인 ‘고지마’와 가해 학생 ‘모모세’를 통해 근본적인 선과 악에 대해 묻는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벌어지며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는 모모세의 논리는 ‘모든 약함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고지마의 논리와 대치된다. 소설은 궤변 같기도, 타당한 논리 같기도 한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들려줌으로써 ‘약자와 강자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학교폭력 문제의 본질을 살핀다.
약자를 괴롭힌 이는 똑같이 되갚아주어야 한다는 ‘사이다’같은 보복이나 복수 이야기가 아니라 학교 폭력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이 근절해야 한다고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서, 더 악질적이고 교묘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때릴 때도 보이지 않는 곳을 때린다든지, 청소도구함에 들어가 있으라고 협박을 한다든지, 반 아이들을 시켜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선생님과 반 아이들에겐 잘생기고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라는 니노미야의 특징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고지마가 누구”냐고 묻는 모모세의 모습이나 ‘재미있다는 듯 웃으면서’ 동조하는 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헤븐》에 사용된 가와카미 미에코의 간결하고 솔직한 문장은 작품이 현실적으로 와닿을 수 있었던 데 힘을 더했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명료한 문장들은 작품 내에서 ‘왜 하필 그 대상이 자신이어야만 하는지’ 고민하는 ‘나’의 고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 인터뷰에서 가와카미 미에코는 이 작품이 “열네 살짜리 내레이터에게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주고 싶어서”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가 《헤븐》의 내레이터인 열네 살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주인공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저자_가와카미 미에코Kawakami Mieko, 川上未映子
1976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2002년 가수로 데뷔해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07년《와타쿠시리쓰 인 치아, 혹은 세계》로 등단해 2008년《젖과 알》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시집《끝으로, 찌를 거야 찔릴 거야 자, 됐어》로 나카하라 주야 상, 2013년 시집《물병》으로 다카미 준 상과《사랑의 꿈이라든지》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2016년《동경》으로 와타나베 준이치 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모두 한밤중의 연인들》,《너는 아기》,《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무라카미 하루키 공저),《위스테리아와 세 여인》 등이 있으며, 2017년에는 무크지《와세다문학 여성호》 책임 편집을 맡았다.
이후 여러 권의 시, 수필, 소설을 출간해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번역 출간했다. 2010년 발표한《헤븐》으로 당대 최고의 여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무라사키 시키부 문학상을 수상했고,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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