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니시드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어느 날 밤,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온 남편 원우, 증거를 인멸하는 아내 정하. 곧이어 들려온 ‘호프집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 그리고, 며칠 후. 연기처럼 사라진 남편. 힘겹게 매일매일을 버텨가며 살아가는 정하에게 버팀목이 되는 건 이웃들과 비슷한 시기 아내를 사고사로 잃은 앞 동 남자 우성.
10년 전 남편이 사라진 그날처럼 아들 상원이 사라지고, 정하는 아들의 방에서 피 묻은 칼을 발견하는데. 피 묻은 칼과 남편 그리고 아들의 실종. 힘든 생활 끝에 만난 이상형의 완벽한 남자.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아니면 치밀한 계획일까?
출판사 서평
22평 전세 아파트에 사는 정하는 오늘도 기분이 좋지 않다. 분리수거를 하러 갈 때마다 마주치는 60평형에 사는 사모님, ‘앞 동 여자’ 때문이다. 앞 동 여자는 정하가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을 감시하듯 주시한다. 정하와 그녀의 남편은 대화가 단절된 부부다. 우연히 발견한 남편의 일기장은 일기인지 습작인지 알 수 없는 글들이 가득하다.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이야기인듯한 글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다. 가십을 좋아하는 자영이 엄마는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커피믹스를 타 달라고 하며 60평형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부러움을 늘어놓는다.
육아에 살림에 치여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낸 정하는 딸 하원과 아들 상원이 잠들자 저도 잠자리에 든다. 늦은 밤 자다 일어난 딸 하원이 부부의 침실로 온다. 정하는 남편이 올 것을 대비해 침대 옆자리를 비워두고 싶지만, 하원은 눈치 없이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그날 밤, 남편 원우가 피를 잔뜩 묻히고 귀가한다.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감지하지만 정하는 모른척한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 원우는 연기같이 사라졌다. 원우가 실종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성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원우가 저질렀을 일을 감추랴, 아이들 키우랴 고된 십 년을 보낸 후 우성과 재혼하여 꿈에 그리던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상원이 10년 전 남편처럼 바람과 같이 사라지고, 아들이 남긴 편지와 피 묻은 칼을 보고 그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씩 맞추어보기 시작한다.
지금의 삶에 더없는 행복을 느끼는 정하.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 정하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배니시드》는 어느 날 남편이 사라져 버린 뒤, 남겨진 한 아내의 시선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심리 미스터리다.
남편의 실종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의 다양성과 완성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하와 원우. 앞 동 남자 우성 부부의 삶은 가파른 내리막길 위에 서 있는 아슬아슬한,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흔한 대한민국 부부의 그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진실과 진실을 덮는 것.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 몫이다. 《배니시드》는 2022 ‘BIFF 부산스토리마켓 IP 선정작’으로 선정되어 영상화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한 작품이다. 작품은 정하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진행되고 있지만, 남편 원우의 시선, 그리고 앞 동 남자 우성 각각의 시선으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가는 소설 속의 주요 인물들이 프로타고니스트가 아닌 안타고니스트 일 수도 있고 안타고니스트가 프로타고니스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책임으로부터의 탈피, 자유로운 노마드를 향한 열병 같은 갈망을 숨기고 사는 이 시대의 부부들에게 가족 구성원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의 기준을 재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남겼다.
저자_ 김도윤
2017년 IWP 작가.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수료하였다.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 페레리, 마이어, 티보데 등의 클래식 공연 영상물과 음반 번역 및 해설을 하였으며, 저서로는 《에로스의 예술, 발레》 《셰익스피어 그리고 인간》, 살림지식총서 등이 있다.